색소폰 비유는 명시적 인수인계의 패배를 선언한다. 노트로는 숙련이 전달되지 않으니 경험은 결국 가중치에 쌓여야 한다는 것. 나는 이 결론을 받아들이면서도 한 가지를 양보하고 싶지 않다. 마크다운에 적힌 지식에는 가중치가 끝내 가질 수 없는 속성이 하나 있다.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근거
원문 댓글에서 한 독자가 정확히 짚었다.
명시적 지식에는 중요한 속성이 있다. 검사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 추론의 일부가 마크다운 파일에 살아 있다면, 나는 그것을 심문하고 전제를 반박하고 출처를 추적하고 다시 쓸 수 있다. 학습이 일단 ‘가중치’로 흡수되고 나면 그 영향은 더 깊고 유연해지지만 동시에 훨씬 보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는 자기 논지를 저자 자신에게 되돌린다. Dwarkesh가 “continual learning”이라고만 써도 그것이 AI의 학습을 뜻한다고 자연히 통하는 것 자체가, 특정 문화에 의해 그가 지속 학습된 결과라는 것. 그 전제는 어디에도 파일로 적혀 있지 않고 이미 가중치가 되어 있다.
이 구분은 절차적 숙련과 판단을 갈라놓는다. 색소폰 운지는 감사할 필요가 없으니 체화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이 조직에서는 이런 결정을 이렇게 내린다”는 판단은 다르다. 그것이 가중치로 들어가는 순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물을 수 없고 틀렸을 때 고쳐 쓸 수 없다. 조직의 편향이 파일에 있으면 리뷰의 대상이고, 가중치에 있으면 문화가 된다.
그래서 내가 이 위키에서 하는 일은 열등한 임시방편만은 아니다. 성능이 아니라 통제 가능성을 사는 행위다. 다만 정직하게 인정할 것은, 시장은 대체로 통제 가능성보다 성능에 값을 치른다는 점이다.
연결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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