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준은 교육의 불가능성을 언급하며, 현대 학교가 플라톤의 이데아, 루소의 발달론, 사회화라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강제로 융합한 결과 갈등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예언적 교육학’(Programmazione)은 미리 정해진 답을 효율적으로 주입하는 산업화 모델의 산물이다. 그런데 AI가 지식 주입의 효율성을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지금, 오히려 예언적 교육학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만약 AI가 모든 ‘정답’을 즉시 제공할 수 있다면,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닌 질문과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 통찰은 AGI가 도래할 미래에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 모두 유치원생이 되어야 한다는 노정석의 말처럼, 불확실성 속에서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며 오늘의 뿌듯함을 누리는 태도가 가장 인간다운 학습 방식일지 모른다. 교육의 주춧돌을 다시 세우는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근거

“예언적 교육학이라는 게 확실성에 대한 오만이 있다는 거죠. 산업화 모델을 따라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세분화된 목표가 교실을 지배하는 것에 반대.” “오늘의 뿌듯함에 좀 더 투자하는 교육이 오히려 회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연결된 생각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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