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준은 키어런 이건(Kieran Egan)의 글을 인용하며 교육에는 본질적으로 ‘불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루소의 발달론, 플라톤의 학문적 이데아, 사회화 요구가 학교 안에 공존하며 서로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조건이다. 프로그램화된 예언적 교육학이 ‘확실성에 대한 오만’이라면, 프로제타치오네는 ‘불확실성에 대한 겸허’에서 출발한다. 교육이 언제나 예측과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교사는 학습자의 현재 탐색에 집중할 수 있고, 오늘의 뿌듯함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근거

“교육이 참 보면 볼수록 되게 어렵거든요. … 교육의 어떤 불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었구나 라는 거예요.”

연결된 생각

출처

클리핑 ·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