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을 8조 원에 매각하기 위해 JP모건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2019년 4.75조 원에 인수한 회사를 배당금으로만 1.5조 원을 회수하고, 7년 만에 두 배 가까운 가격에 내놓는 셈이니 투자 관점으로만 보면 성공한 거래로 보인다. 인수 후보로는 우버/네이버가 강력한 후보자로 언급되는 가운데, 알리바바, 도어대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기사를 읽으며 과거의 기억과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당시의 치열했던 현장을 복기하며, 리더의 의사결정과 책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Project Ocean(배민 인수 프로젝트)의 시작
배민을 인수하자는 것은 원래 DH 본사와 요기요가 함께 수립한 전략이었다. 단순히 1위 사업자를 사들이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국 배달 시장을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하고, 이를 발판 삼아 퀵커머스(Quick Commerce)를 비롯한 본격적인 커머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거대한 구상이 있었다.
통합을 통해 만들어낼 시너지는 명확했다. 라이더 네트워크의 효율화, 레스토랑 커버리지의 확대, IT 중복 투자의 제거를 통해 비용과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그렇게 확보한 자원을 다음 단계의 성장에 재투입한다는 전략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이 핵심 변수였지만, 승인 이후의 더 깊은 통합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 역시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략적 목표 하에, 2018년 배민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다.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려 배민의 출혈을 강제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 판단했다. 같은 할인 경쟁이라도 점유율을 방어해야 하는 1위 사업자가 훨씬 더 많은 현금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인수가 실패하더라도 확고한 2위 업체로서 점유율을 높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성과라는 계산도 있었다.
전략은 의도대로 작동했다. 점유율이 빠르게 확대되자 배민은 거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자금 압박을 받던 배민은 외부 투자자를 찾았으나 실패했고, 결국 2019년 12월 4.75조 원에 DH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략의 승리였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이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거울처럼 닮은 두 개의 딜, 그리고 뜻밖의 조건
흥미롭게도 한국 이커머스 역사상 가장 큰 두 개의 M&A는 모두 2위 업체가 1위 업체를 인수한 거래였다. eBay의 G마켓 인수, 그리고 DH의 배민 인수. 모두 해외 플랫폼 기업이 국내 1위 사업자를 인수한 사례였고, 공정위 심사의 쟁점 역시 시장 획정과 결합 후의 경쟁제한성 여부로 동일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G마켓 인수 때는 이베이코리아 전략실장으로 딜을 직접 리드했고, 배민 인수 때는 요기요 CEO로서 본사 딜 팀을 지원하며 두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1년에 걸친 공정위 심사 끝에 내려진 결정은 예상 시나리오를 벗어났다. ‘요기요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배민 인수를 허가한다’는 구조적 조치(Structural Remedy)였다. 과거 G마켓 인수 때처럼 행위 규제 정도로 끝날 것이라는 시장의 우세한 시각을 뒤엎은, 한국 M&A 역사상 매우 예외적인 결정이었다. DH는 배민의 가치를 선택하며 이 조건을 받아들였고, 경영자로서 나 역시 그 결정을 존중해야 했다.
구조가 규정하는 리더의 자리: 니클라스의 말
요기요 매각 결정이 발표되던 날, 당시 DH의 CEO였던 니클라스(Niklas Östberg)와의 1:1 미팅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봉, 나는 DH의 CEO로서 본사 주주들에게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해야 할 책임이 있어. 네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너도 같은 결정을 했을 거야.”
그 말은 무겁고 냉정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요기요 CEO로서 요기요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처럼, 그 역시 본사의 CEO로서 자신의 책임 구조에 충실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느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자리가 규정하는 책임의 구조와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리더의 숙명임을 깨달았다.
요기요의 시련과 한계
조건부 승인이 떨어진 직후부터 요기요의 진짜 시련이 시작되었다. 공정위 심사 1년, 매각 절차 1년, 도합 2년의 시간 동안 요기요는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봉인당했다.
DH 본사 입장에서는 배민 인수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요기요가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여 공정위 심사에 자극을 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매각 단계에 돌입한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인수 대상이 될 경쟁 기업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주주는 없다. 100% 지분을 가진 주주의 이해관계와, 현지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어긋난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회사를 이끌어야 했던 것은 경영자로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우리가 처음 그렸던 통합 플랫폼 기반의 퀵커머스 시나리오는 그 2년의 공백 속에서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정말 힘들었던 2년이었다.
이후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매각된 요기요는 거대 경쟁자들 사이에서 차별화의 축을 찾아야 했다. 끊임없는 실험과 주주의 인내심이 필수적인 타이밍이었으나, 단기 재무 성과 중심의 사모펀드 시간표와 Small Player의 체질 개선에 필요한 시간표는 본질적으로 일치하기 어려웠다.
당시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던 브랜드가 점차 지위를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서글펐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당시 나 역시 2년간의 극심한 피로 속에서 완전 방전 상태였고, 그 구조적 난제를 끝까지 밀어붙여 돌파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예측과 다르게 흘러간 시장의 변수
우리가 규제와 매각의 터널에 갇혀 있는 동안, 시장의 판도는 바뀌고 있었다. 당시 초창기였던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을 무기로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며 추격해 오고 있었다. 당시 요기요 경영진이 분석한 유닛 이코노믹스(Unit Economics)에 따르면, 쿠팡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단위당 적자를 1년 이상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예측은 맞았다. 2022년 엔데믹 전환과 함께 쿠팡이츠는 MAU가 38% 급감하며 매각설이 돌 정도로 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비즈니스 게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요기요 매각 이후 DH 본사의 글로벌 재무 상황이 악화되면서, 배민은 글로벌 본사 매출의 25%를 책임지는 캐시카우 역할을 강요받게 되었다. 본사의 생존을 위해 한국 시장에서 과도하게 현금을 쥐어짜내야 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결국 배민은 쿠팡이츠와의 점유율 전쟁에 방어적으로 임하며, 수익 극대화로 스탠스를 전환했다.
이 지점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배민의 수비적인 선택은 위기에 몰렸던 쿠팡이츠에게 결정적인 숨 쉴 공간을 제공했다. 그리고 쿠팡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단순한 배달 앱 간의 치킨게임이 아니라, ‘와우 멤버십’이라는 거대한 커머스 생태계의 자본력과 락인(Lock-in) 효과를 연동시켜 싸움의 차원 자체를 바꿔버렸다. 단일 배달 플랫폼의 역량만으로 쿠팡의 거대한 생태계 해자를 넘어서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시장의 실질적인 주도권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판단해 볼 문제다.
복기를 마치며
때때로 부질없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만약 공정위가 요기요 매각 대신 행위 규제라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 2년의 공백 없이 배민과 요기요가 연합하여 정상적인 방어 전략을 펼쳤다면, 쿠팡이츠가 지금과 같은 파괴력으로 시장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적자가 누적되던 쿠팡이츠로서는 사업을 축소하고 대만 등 해외 시장에 집중하는 시나리오로 선회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영자로서의 내 판단이다.
그러나 비즈니스에서 지나간 역사에 대한 가정은 의미가 없다. 28년 동안 비즈니스 현장에서 배운 명확한 진리는 하나다. 딜(Deal)이 종결되는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존 게임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 인수되었는가보다, 그 이후 어떤 경영 철학과 전략으로 운영하느냐가 최종 결과를 만든다.
압도적 지위를 가졌던 배민이 본사의 구조적 사정으로 인해 7년 만에 다시 불안한 1위의 모습으로 매각의 길에 오른 현재의 상황은 참으로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될 배민의 다음 장(章)이 어떤 전략과 운영 방식으로 쓰여 나갈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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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경험들의 공유 옛 생각 납니다.
아련하단 단어가 생각나네요. Blu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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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감 넘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요구되는 현장과 법/규제가 얽히는 모습을 잘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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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for sharing not only the successes but also the failures and limitations so honestly. It was very insightful to read about the real experiences and challenges behind management decisions. I look forward to your future stories and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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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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