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능력은 직업 이름이 없다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자주 업신 받았다.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는 참 이상한 일처럼 보인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애플을 만든 사람이고,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 앱스토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만든 사람이다. 그런데도 컴퓨터 천재들이 모여 있는 세계에서는 이런 조롱이 따라붙었다.

“잡스가 정확히 하는 일이 뭐야? 코딩도 못 하잖아.”

이 질문은 잡스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훨씬 오래된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거 하나 알고 있나?? 우리는 누가 문제를 풀었는지보다, 그 사람이 그 문제를 풀 자격이 있어 보이는지를 먼저 본다.

내가 있는 IT나 기술 세계는 유난히 이 본능이 강하다. 과거에 코드를 쓰는 사람은 코드를 쓰지 않는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꼈고, 수학을 아는 사람은 시장을 아는 사람보다 위에 있다고 느꼈다. 이 위계는 겉으로는 전문성의 위세 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계급적 차별이 들어 있다.

“네가 뭘 안다고?”

이 한 문장이 이 아티클의 모든 걸 설명한다.

잡스가 한 일은 당연히 코딩이 아니었다 대신에 그는 사람의 욕망을 누구보다 잘 읽었다. 엔지니어들이 “이건 충분히 작동한다”고 말할 때, 잡스는 “사람들이 이걸 사랑하겠냐?”고 되물었다. 엔지니어가 순수한 기능을 봤다면, 잡스는 인간의 경험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소프트웨어 업계의 위계질서에서는 코드를 직접 쓰는 행위가 가장 우월한 능력처럼 취급됐다. 손으로 코딩을 하는 사람과, 직접 제품을 구현한 사람 그리고 알고리즘을 이해한 사람이 계급의 최상단에 놓인다. 반대로 기획, 디자인, 포지셔닝, 세일즈 같은 것은 개발자들을 도와주는 부차적인 작업으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코드를 사지 않았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제품을 샀다. 가장 우아한 아키텍처를 기억하지 않고,자기 삶을 바꾼 경험을 소비자들은 기억을했다.

그래서 혁신은 종종 “정통 엘리트”가 아니라 경계선에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내부자들은 게임의 규칙을 너무 잘 안다. 바깥쪽 사람은 왜 이 규칙이 진리인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부터 의심했다.

잡스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불편한 존재로 보인 이유도 이것 때문이였다. 그는 개발자의 언어를 완전히 쓰지 않았지만, 엔지니어의 산물을 세상이 욕망하는 형태로 바꿨고 탁월했다. 소프트웨어 업계 내부 위계로 보면 참 애매한 사람인데, 시장 결과로 보면 업계의 중심에 선 사람이였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미움을 받는다.

의사는 의학계의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을 신뢰한다. 개발자는 개발자의 룰을 지키는 사람을 신뢰한다. 학자는 논문과 인용과 학벌의 언어를 쓰는 사람을 신뢰한다. 그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누군가 좋은 해결책을 가져와도 먼저 의심받는다.

“방법은 흥미로운데, 저 사람이 그걸 말할 자격이 있어?”

이 대답이 나오는 순간, 문제 해결은 계속 뒤로 밀린다. 이제 논의의 핵심은 효과가 있느냐가 아니라 해결을 하는 사람의 계급의 중요성으로 변질됐다. 해결책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보다, 그 해결책을 낸 사람이 우리 집단 안에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이건 우리 인간이 멍청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인간적이라서 생긴다.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계질서를 안전장치로 쓴다. 모르는 아이디어를 평가하기 어려우니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의 배경을 본다. 학위, 직함, 회사, 출신, 경력, 말투, 사용하는 단어.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업계의 필터가 된다.

문제는 이 필터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주 고장 난다는 점이다.

진짜 새로운 해결책은 기존 위계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무 낯설고, 너무 단순하고, 너무 이상해 보인다. 기존 업계의 정통 엘리트가 보기에는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 “저런 식으로 된다고?”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자주 그렇게 나온다. 너무 단순해서 무시당하고, 너무 실용적이라 천박해 보이고, 너무 바깥쪽에서 와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트가 틀렸고 아웃사이더가 맞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보면 또 우리는 다른 오류에 빠진다. 세상에는 실제로 엉터리 아웃사이더도 많다. 기존 질서를 공격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아이디어가 혁신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은 기존 질서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작동하는 해법까지 버려지는 경우다.

잡스가 코딩을 못 한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잡스가 만든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었다. 코딩 능력은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드는 능력의 일부지만 전부가 아니다. 좋은 제품은 코드, 디자인, 유통, 가격, 브랜드, 타이밍, 유저의 감정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런데 업계 위계질서는 본인이 측정할 수 있는 능력만 진짜 능력으로 인정한다. 코드는 볼 수 있고, 학위는 볼 수 있다. 하지만소비자 경험, 맥락의 연결 능력, 문제의 핵심을 읽는 능력은 겉으로는 잘 안 잡힌다.

진짜 우리가 흥미로운 봐야 할 부분은, 이 위계질서가 AI 시대에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직접 할 줄 아느냐”가 전문가의 강력한 프리미엄이였다. 코드를 직접 짤 줄 아는 사람, 포토샵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영업 도메인을 아는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위계를 지켰다. 이 도구라는 것을 다루는 능력이 곧 진입장벽이였다.

하지만 AI는 이 진입장벽을 서서히 낮추고 있다.

이제 비개발자도 간단한 앱을 만들 수 있다.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시안을 만들 수 있다. 애널리스트가 아니어도 데이터를 요약할 수 있다. 글을 오래 배운 사람이 아니어도 초안을 뽑을 수 있다. 물론 결과물의 최종 품질은 여전히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실력 차이를 드러내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작할 수 있는 허들”는 훨씬 낮아졌다.

그리고 기존 전문직 위계질서는 불편함을 느낀다.

“저건 진짜 코딩이 아니다.”

“저건 진짜 디자인이 아니다.”

“저건 진짜 글쓰기가 아니다.”

“저건 그냥 AI가 해준 거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AI로 만든 조잡한 결과물은 진짜 많다. 하지만 이 업계 전문가들의 내면 밑바닥에는 다른 감정도 있다. 예전에는 내부자만 손댈 수 있던 영역에 바깥사람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불쾌감이다.

잡스가 코딩을 못 한다고 조롱받은 장면과 내가 볼때는 꼭 닮았다. 그래서 그 뒤에 맞닥뜨릴 핵심 문제는 “결과가 잘 나왔는가”가 아니라 “네가 이걸 할 자격이 있는가”로 바뀐다.

AI 시대의 진짜 승자는 AI를 써서 전문가 흉내를 내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 사람은 X나 SNS 올려도 금방 들킨다. 결과물이 얕고, 자기의 판단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업계에는 자기만의 엘리트 계급이 있다.

여전히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코어 엔지니어가 높게 평가된다. 금융에서는 투자 판단을 다루는 사람이 높게 평가된다. 학계에서는 고급 논문을 쓰는 사람이 높게 평가된다. 미디어에서는 오랫동안 편집 권한을 가진 사람이 높게 평가된다.

이 위계는 인간 사회에서는 당연히 필요하다. 아무 기준도 없는 세계는 사기꾼이 득세할 것이다 맞다 전문성은 실제로 중요하다. 문제는 전문성이 어느 순간에 고인물로 변할 때가 위험하다.

고인물이 된 전문성은 이렇게 질문을 바꾼다.

“이게 맞나?”가 아니라 “누가 말했나?”를 묻는다.

“작동하나?”가 아니라 “우리 방식인가?”를 묻는다.

“사람들이 쓰나?”가 아니라 “품위가 있나?”를 묻는다.

이런 문제 이슈들이 많아질수록 조직은 똑똑해 보이지만 느려진다. 이상하거나 틀린 아이디어를 걸러내는 능력은 좋아지지만, 혁심을 알아보는 능력은 떨어진다. 바깥의 누군가는 조잡하지만 작동하는 것을 시장에 계속 내보낸다.

그리고 시장은 자주 조잡한 제품을 선택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고인물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먼저 풀어줬기 때문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AI 시대에 더 위험한 건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만 알면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앞으로 많은 직업의 위계가 흔들릴 것이다. 개발자는 기획을 무시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기획자는 개발을 모른다는 핑계를 대기 점점 더 어려워질것이다. 디자이너는 제품 지표를 봐야 하고, 마케터는 자동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모든 산업 경계가 흐려진다.

잡스가 코딩을 못 했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은 한계를 드러낸다. 코딩이라는 잣대 하나로 제품 혁신 전체를 재려 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실수한다.

혁신은 자주 위계질서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세상을 바꾼다.


원문: https://x.com/supernovajunn/status/2059020885579935892?s=52